
체육협회가 여러 뉴스가 나오는 와중에도 항상 양궁은 조용하게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 같다
그 이유가 궁금해져서
이 전에 들었던 강연을
정리해봅니다
1. 처음부터 한국양궁이 정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양궁 후진국이었다
국제대회도 나가지 못하였다
그 당시 일본은 아시아 최강이었다
한일양궁 교환경기를 제안하였다
일본과 국제대화에서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6~7명을 출전해달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협회는 외국에 나가고 싶어서 그런 것으로 오해하였다
우여곡절끝에 여자만 출전하기로 하였다
김진호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첫 출전에서 6개중 5개를 획득하였다
아시아선수권 3번 우승은 세계선수권 1번 우승과 같았고
세계선수권 1번 우승은 올림픽 9관왕과 동일하였다
재미있게 일본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다음 아테네 올림픽에서 서양순 금메달, 김진호는 동메달를 땄다
남자양궁이 충격에 빠졌지만.
하니깐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기부여가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2. 장기적으로 정상유지를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최고가 되었다
전략정보보안 차원에서 국제무대에 출전하지 않기로 하였다
96년 아틀란타올림픽 남자단체전에서 1점차이로 은메달를 땄다
잠을 자지 못했다
왜 중요한 순간 남자는 실패할까? 고민하였다
지난 10년을 분석하였다
장비의 70%는 미제, 30%는 일제였다
남자는 미국제품을 선호하고, 여자는 일본제품을 선호하였다
미국이 제품공급을 중단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훈련량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몸으로 떼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수안보에서 약 600명이 모였다
양궁장비를 만들어보자고 결론이 났다
활를 만들 수 있는 두 개의 장난감회사를 정하였다
장난감회사 6~10명 영세한 기업에서 시작하였다
장난감 회사의 매출를 보장해주어야했다
우선적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국산 쓰도록 규정을 변경하였다
저항이 심하였다. 학부모들의 저항이 컸다
인터넷이 발달되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장난감회사의 제품은 박진감이 넘쳤다
활이 어디로 튀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내부의 저항이 더 힘들었다”
1년반이 지나 위기속에 기회가 왔다
활의 가격 예전 350만원, 소를 팔아도 안되고 논과 밭을 팔아야하는 가격이었다
문제는 6개월정도만 사용가능했다
IMF터지고, 1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통찰력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양궁을 이용하여 3개의 금메달획득하였다
최고의 마케팅을 하였다고 생각했다
주문이 쇄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위기가 온다
계약건수가 없었다. 해외판매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4년간 투자하라고 계속 설득하였다
시드니에서 금메달 3개 획득하고, 2년동안 세계대회에서 8개중 6개를 획득하였다
그제서야 제품문의가 쇄도하였다. 24시간 3개월을 밤을 세워가면 공장을 가동하였다
지금은 전체의 70%정도의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다
하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공정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였다
인재를 구하는 것이 난제이다
국내 양궁선수는 1300명이다
10~14번의 국제대회를 치르고나면 120명 선발전 자격이 주어진다
계속된 선발전을 통해서 64명, 32명, 24명, 8명, 4명이 남고 결국 3명이 남는다
최종적으로 여자3, 남자3 선출한다
8,9.10차는 국제대회를 참가한다
4명중 3명 선발은 너무 가혹행위가 아니냐
양궁 너무 잔인하다고 말한다.
2012년 직후 2013년 바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하였다
7차 평가전이 끝났다
2012년 여자올림픽 메달리스트 3명 중에 벌써 2명을 탈락했다
작은 꿈을 즐기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마지막에 살아남는자가 강한자이다
자기관리 철저하지 못하면 떨어진다
평가전에서 공정성이 중요하다
스타선수에게 어드벤티지가 주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에 스타선수에게 예외규정을 주자는 요청이 있었다
공정성을 통해서 가난한 선수에게 희망을 준다
짧게 보면 스타선수를 뽑는 것이 맞지만, 길게보면 그렇지 않다
50%가 벌써 변경되었다
3. 예외적인 방법이 아니면 예외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우연히 TV에서 기보배 선수가 우는 것을 보았다
금메달은 딴 것은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멕시코 선수가 못해서 라는 덧글에 억울해했다
자신은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실력없이 올림픽 예선전에서 전체 1위를 할 수는 없다
실제로 하루에 4번 훈련을 하고 중간 웨이트를 한다
매일 극한으로 몰고간다
올림픽에서 9발내지 ~ 15살 쏘기위해 모든 것을 쏟아붙는다
천발의 열정, 한발의 냉정이라는 말이 잘어울린다
뒷이야기이자만 시합전에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선수에게
전화를 하였다.
우승만 하면 동상을 세우고, 평생 먹고살 걱정이 없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 욕심은 긴장을 만들뿐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결승전 연장전 기보배 선수가 마지막 8점을 쏘았을 때
난 망명을 생각했다
같은 8점을 쏘았지만, 2mm 차이였다
운도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팀웍이 70%, 30% 개인역량이다
해병대 UDT훈련을 할 때 특전사도 여고생이 훈련받는 것을 보고 감탄하고
금메달를 따는 이유가 있다고 칭찬한다
11M 4층 높이에서도 뛰어내린다
나도 훈련에 같이 참여한다
솔선수범해야한다
일방적 지시문화에서는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을 찾기 어렵다
번지점프도 즐길 때까지 반복한다. 담력, 결단력향상에 기여한다
번지점프에서 그 순간의 긴장감은 10점을 맞추어야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담력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5월 1일에도 두번 뛰어내렸다
예전에 한 여자선수가 번지점프를 하지 못했다
시범을 보였다. 9번 뛰었다.
1번에 4만원이다
번지점프할 때 나도 겁이 난다
번지점프관리인이 줄의 장력을 계산 잘했는지 항상 확인한다
9번 시범 후 그 여자선수는 죽을 각오로 하고 뛰어내렸다
알고 보니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2달 후 실제상황이 벌어졌다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 10점을 쏴야 우승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여자선수는 10점을 쏘았다
그 선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10점을 쏠수 있었냐고
번지점프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뛰어내렸던 그 순간으로 살겠다고 이야기하였다
4. 자신과 무한경쟁하였다
주말부부로 생활하였다
주말에 훈련 후 집에 돌아오면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와 어디 가지 못했다
여행은 가슴떨릴때까지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된다
20년 동안 책을 열심히 읽었다
생각만하는 98%가 아닌 행동하는 2%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장비탓 날씨탓 하지말고 ,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물어라
일찍 준비해야한다. 준비에 실패하는 자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적은 자기 자신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 최악을 고려할 때 절박함이 생긴다
현실성에 적당히 안주하고 싶은 매너리즘에 주의했다
한국양궁은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살았다